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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 여자배구단 동행취재기>
중국동포 여자배구단, 전국대회 4번째 출전
고구려 민족의 기백으로 열심히 전진하라!
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새벽, 6시__. 아직은 어둠이 짙게 깔린 시간, 서울 대림동의 한 길목에서 25인승의 작은 버스에 오르는 총인원 23명의 한 무리가 있었다. 이들은 이날 경북 영주를 향해 떠나는 사람들로 한국에 체류하는 재한중국동포배구협회 임원과 선수들이었다.
이날, 이들은 경북 영주에서 열리는 “제47회 박계조배 전국남녀 9인제배구대회”(총 103개팀이 참가)에 출전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모여 출발하는 것인데 이날 나도 중국동포배구협회 지태림 회장의 특별한 초청을 받고 동행취재차 버스에 올라 함께 영주로 향했다.
버스는 시내를 빠져 나간후 영동고속도로를 경유 내륙고속도로를 달려 출발시간 3시간이 지난후인 오전 9시 20분에 영주 시민운동장의 영주 국민체육센터에 도착, 곧바로 대진표를 확인, 보조경기장에서 잠시 연습을 한후 10시가 넘어 경기도 화성팀과 첫 경기를 펼쳤다. 이날의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서 특별히 연길에서 온 두 선수가 있었는데 한사람은 성급 국가대표 선수였던 백춘자씨고 또 한사람은 최영희씨였다. 이들 두 사람은 자비로 비행기표를 구입, 이날의 경기에 참석한 것인데 참으로 그 열정이 대단하여 나도 그 말을 듣고 감동을 했다.
그러나 첫 경기는 매우 만족치를 못했다. 아무래도 전날부터 출전 준비를하고 또 충분한 수면도 취하지 못한채 새벽에 출발을 했고 불편한 좁은 버스에서 아침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기에 1, 2셋트 모두 완패하고 오후에 있을 의왕팀과의 경기를 기대해야 했다. 나는 오전의 1차 경기를 지켜보면서 선수들 중 백춘자, 리선녀, 전순자, 최복자씨 등 몇몇 선수는 뛰어난 기량의 선수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점심은 영주시내의 한 식당에서 설렁탕과 고등어조림으로 했고 이 자리에서 지태림 회장은 참석자 모두를 한사람씩 소개를 했다.
이번 “제47회 박계조배 전국남녀 9인제 배구대회”에 출전한 동포 선수들은 한국에 체류중인 50만 중국동포를 대표하여 남자도 아닌 여자들로만 지난 2월에 창립했는데 연령은 30~50대의 선수들로 지난 7월에는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전국남녀 9인제 배구대회"에서 여자장년부 3위로 입상을 했고 6월에는 잠실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경제배 전국여자배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팀이었다. 선수들이 고정돼 있는것도 아니고 계속 바뀌는 것을 감안한다면 매우 좋은 성적을 올렸다고 본다.
이날의 자리에서도 서로가 초면인 선수들이 많이 있기에 조유연 선수가 선수들을 대표하여 선수들과 스탶진도 소개를 했고 초청인사인 동포로 있다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단체인 “귀한동포연합회”의 이용주 홍보부장, 지용호, 김전량 선생과 특별히 동포 배구팀에 관심을 갖고 창립시부터 지원을 아끼지 않은 동작구청 복지과에 근무하는 이은숙씨와 코치를 맡은 안봉규씨도 소개를 했다.
점심을 마친 일행은 다시 경기장에 도착, 오후 2시부터 시작된 개막식에 참석을 했다. 단상의 내빈들은 이미 좌정을 하고 있었지만 전국 각 지방에서 참가한 선수단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러나 우리 동포팀은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대오를 정비, 입장을 했고 이 결과로 행사후에는 2위의 입장상을 수상하여 금일봉을 받았고 또 행운권 추첨에는 우리팀 일행중 한사람인 이용주 부장이 당첨, 상품을 수상했다.
개막식을 마친후 우리팀 선수들은 결전을 위한 각오를 새롭게 하고 열심히 연습을 하여 오후 6시가 넘어서야 의왕팀과 경기를 시작했는데 오전과는 달리 하나된 마음으로 뛰고 또 응원도 열심히 해서 1, 2셋트 모두 2:0으로 완승을 거두자 모두가 환호를 했다. 사실 이날 오후의 경기에서도 패하면 리그전에 출전을 할 수가 없어 곧바로 상경을 해야 했지만 일단은 여자클럽팀 8강에 안착을 했기에 다음날인 15일의 경기를 위해 모두가 영주에서 숙박을 해야했다.
이번 배구대회 명칭인 “박계조배”에 대하여 배구인들이 아닌 일반 국민들은 배구계의 전설적 인물인 “故박계조”를 잘 알지 못하고 있는데 그는 1918년에 강화에서 출생, 경기고(당시 제1고보) 4년재학시 배구선수로 활약하면서 두각을 발휘, 1935년에는 철도국 선수로 활동중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스카웃, 동대학의 배구경기 전승을 이끌며 유일하게 한국인으로서 주장을 역임 하는등 배구계의 혜성적 존재로서 8.15 해방후에는 이화여고, 체신부, 해군, 세관 등에서 배구팀을 조직, 지도하면서 후진양성과 배구보급에 공헌한 한국 배구계의 지존으로 알려져 있다.
일행은 먼저 승리의 기쁨을 잠재우고 영주시내에서 가장 맛이 좋다는 “서울뚝배기”식당에서 감자탕으로 만찬을 가졌다. 만찬후에는 가수를 뺨치는 실력을 가진 리정옥, 김경희, 김명희 씨등이 노래를 열창하여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나는 이날저녁, 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옛날 조선의 혁명군들이 일제와 싸우면서 저녁에는 총결을 짓고 노래를 부르면서 단결을 했던 그 모습을 떠올리는 감정을 느꼈다.
이튿날인 11월 15일 일요일__. 영주 황제모텔에서 휴식을 취한 일행은 조찬을 마친후 곧바로 경기장에 도착, 연습을 가진후 오전 10시에 첫 번재로 광명팀과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광명팀은 지난해의 우승팀으로 이번대회에도 수개월간 훈련을 했고 우리팀은 연습도 훈련도 없이 경기에 임했고 또 오후가 아닌 오전의 징크스 탓인지 열심히 싸웠지만 1, 2셋트 안타까운 석패를 했다. 그러나 우리팀은 선수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싸웠기에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옛날 고구려의 민족임을 상기시키면서 그 기백의 정신으로 완벽한 준비를 철저히 해 나간다면 전국에서 최강자의 자리에 설수 있음을 느꼈다.
2일째의 이날 경기에서도 백춘자, 리선녀, 전순자, 최복자, 김명희 선수들은 맹활약을 했고 또 그간 이 대회의 참가를 위해 준비를 해오면서 많은 노력을 한 지태림 회장과 임미화 총무, 박매화 재무의 수고도 많았고 특히 박매화씨는 일행들에게 순간순간 많은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3차전 경기에서 승리를 못했기에 더 이상 경기장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 일행은 서울로 향해야 했다. 11시 30분_, 서울로 출발하는 버스안에서 일행 모두는 경기의 패배를 모두 잊어버리고 즐거움을 찾기위해 돌아가면서 노래자랑을 했는데 내가 볼 때는 모두가 수준급의 실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예술단을 조직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날 지태림 회장은 상경중인 버스안에서 나에게 “앞으로도 계속 국내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참가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선수들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훈련을 하는것도 어렵고 또 연습실과 사무실이 없고 협회 운영등에도 애로가 많아 류국장님께서 대한민국 각계에서 많은 후원과 지대한 관심 및 협조를 갖도록 도와달라”고 말하기에 나는 “노력해 보겠다”고 답을 했다.
류재복<인민일보해외판. 한중경제 특별취재국장>
경기장 밖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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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을 마치고 함께한 선수들, 좌측 백춘자, 리선녀, 최영희, 김명희,조유연
개막식을 기다리면서 입장한 선수들
입장식에서 피켓을 든 조유연 선수
김주영 영주시장으로부터 2위 입장상을 받는 백춘자 선수
행운의 추첨권에 당첨, 상품을 받는 이용주 부장
개막식을 마치고 화이팅을 외치는 선수들
8강에 오르고 화이팅을 외치는 선수들
동작구청 이은숙 선생님
류재복 기자
네트를 뒤로하고 기념촬영을 한 선수단
좌로부터 전순자, 리선녀, 백춘자, 최영희, 최복자, 김몀희 선수
지태림회장(가운데)과 함께 포즈를 취한 선수들
경기전 친선을 위해 광명팀과 함께
동행취재 류재복기자 <사진=류재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