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원고집

3.부처님처럼 잘해주고 ...

世进 2009. 11. 3. 15:39

  고충상담실에서

 

      악몽에서 다시 살아난 조선족여성 정순화씨

 


 


   정순화(가명)씨는 1977년 10월경에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에서 농사일을 하던 정봉철과 허순자의 외동딸로 태어났으며 부모님들은 정순화씨가 초등학교 3학년을 다닐 때 부모님들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친척집에 더부살이하면서 눈칫밥을 먹으면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그녀는 1996년 해림시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는 사람의 소개로 위해 한국기업 가발공장에 근무하였습니다.


  한국기업에서 몇 년간의 근무를 하던 정순화씨는 사장님의 알선으로 2002년 봄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하였고 인천 모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회사 사정이 안 좋아서 부도가 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어서 인근 식당일을 찾아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 07월의 어느 날 식당종업원으로 일을 할 때 식당의 단골손님이었던 김씨가 자기의 친구 박남식이라는 한국남성을 소개하면서 전처가 사별한 자리라이긴 하지만 사람이 착하니까 일단 한번 만나 보는 게 어떠냐? 라는 말을 하기에 전순화씨는 체류만기가 되어 중국에 들어가 봤자  부모형제도 없고 차라리 조상의 나라인 한국에서  연상이라도 일단 ‘착하다.’고 말을 하니 만나보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저녁에 단곡손님이었던 김씨가 친구 박남식을 데리고 식당에 와서 인사를 시키고 소개를 하게 하면서 즐거운 시간 되라고 하면서 김씨는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가고 정순화씨는 가계마무리작업을 다하고 박남식씨와 함께 저녁 12시경까지 조용한 차집에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박남식은 1965년생이고 정순화씨는 1978년생이라 두 사람 나이차이가 15년 차이였습니다. 

   처음 만나서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에게 호감이 생기게 되어 시간 나는 대로 데이터도 하고  나름대로 박남식은 하루가 멀다하게 정순화씨가 일하는 식당에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러 다녔습니다.


  그러는 박남식을 보는 정순화씨는 사람이 말수가 적으면서 점잖아 보였고 정순화씨를 동생처럼 잘 대해주기에 어려서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친척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눈칫밥을 먹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가득한 정순화씨는 박남식이 정순화씨에 대한 자상한 친절함과 부드러운 말투에서 마치 부모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사귀는 동안 박남식은 나름대로 부모형제도 없는 정순화씨에게 부모 못지않게 행복하게 잘 대해 줄 테니 결혼하면 어떠냐고 여러 번 다짐을 하기에 결혼하기로 악속하고 2005년 03월 종로구청장에게 혼인신고를 마치고 월세 방을 얻어서 새살림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박남식이 하는 말이 자기는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집계약서를 정순화의 이름으로 하라고 하니 정순화씨는 ‘왜요?’ 라고 물으니 박남식이 말하기를 ‘자기의 명의로 해도 되지만 혹시 현장에 일이 생기면 보증금을 모두 날릴 수 있으니 당신의 이름으로 계약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하기에  정순화씨는 자기의 돈800만원의 보증금으로 월 25만원의 월세 방을 얻어서 새살림을 시작하였다.


   정순화씨와 박남식이 신혼 생활에서 정순화씨는 첫 결혼이라 한국에서 면사포를 쓰고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신랑에게 ‘우리 결혼식을 언제 할까요?’ 하고 물으니 신랑이 하는 말이 ‘우리 돈을 좀 벌어서 어머님의 계신 울산에 가서 식을 올리자.’고 하였다. 


   정순화씨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일을 하였다.

  반면에 박남식은 건설현장에 다니면서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월급을 못 받았다.’고 하면서 생활비는 일체 주지않았고 오히려 용돈을 정순화씨에게서 달라고 해서 썼으며 집세등 공과금가 각종세금은 모구 정순화씨의 몫이었다.


   새 사림을 시작한지 3개월경부터 집에는 박남식의 우편물이 몇 장씩 날아왔습니다. 정순화씨는 별다른 생각이 없이 남편에게 편지가 왔다고 넘겨주곤 하였는데 무슨 일인지 박남식은 수심에 잠겨있었고 거의 매일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순화씨는 우편물을 하나도 확인안하고 서랍에 넣어 두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다 웬지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어느 날 우편물을 자세히 보게 되었고 우편물을 본 정순화씨는 눈앞에 보인 우편물들이 천둥번개마냥 무서웠으며 너무 놀라서 세상이 다 뒤 짚이는 줄 알았다.


   중국에는 부모형제도 없는 혈혈단신의 로 처녀가 한국에서 마음씨 착한 남편을 만나서 부모처럼, 오빠처럼, 남편처럼 철석같이 믿고 결혼하였는데 이제와 보니 은행 빚이 1억 정도였고 의료보험공단에 보험금채납금이 90만원인 신용불량자였다.


   박남식은 이 모든 사실을  사랑하는 정순화에게 한마디도 없이 속이고 결혼을 하여 그 사실이 들통 나자 결혼 전에 정순화씨를 만날 때 와 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등장하였다.


정순화씨는 마음을 진정하고 남편에게 따졌다. ‘오빠가 나에게 부모 못지않게 잘 해준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는가? 이건 사기 결혼이 아닌가?’ 하고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은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이 뻔뻔스럽게 하는 말이 ‘세상 사람들이 다 그래, 결백한 사람이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 그래.’ 라고 하면서 ‘중국 거지같은 년이 싫으면 니네 나라로 가라’ 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해댔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당연한 것처럼 정순화씨에게 술 사와라 하는 식으로 신부름을 시키고 마실 때 마다 과음을 하고 과음하면 어김없이 XX년 하면서 중국 년들이 어쩌고 하면서 뭐라고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는 것이 일수였으며 반찬투정을 하면서 밥상을 뒤집는 일은 습관화로 되었다.


   하늘이 맺어진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정순화씨는 유일하게 남편을 믿었던지라 힘들더라도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벌려고 노력을 하지만 남편은 이핑계 저핑계 대면서 전혀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정순화씨는 보다 못해 남편에게 ‘오빠는 나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내가 열심히 일을 하면 오빠는 나보다 더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하고 물으니 ‘네가 중국가고 싶으냐?’ 하면서 ‘출입국에 전화 해줄 가?’ 하며 뻔뻔스럽게 원고를 위협하였다.


   정순화씨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내가 중국은 왜 가는데 중국에 피붙이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오빠하고 힘을 합쳐서 살려고 결혼한 것이잖아?’ 오빠는 결혼이 뭐 애들 장난이야? 오빠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가?’ 하고 울면서 말을 하였다.


   정순화씨의 말만 들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정순화씨의 머리채를 웅 켜 잡고 마구 흔들면서 주먹으로 귀 뺨을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쓰러진 정순화씨를 밟으면서 “XX년 중국거지 같은 년이 죽고 싶으냐?” 하면서 정순화의 옷을 벗기더니 알몸둥이를 밧줄로 묶어 놓고 식칼을 목에 대면서 “다 죽여 버린다.”라고 위협하면서 야구 방망이로 마구 때렸습니다.


   하여 정순화씨는 남편에게 맞아서 눈 통이 밤 텡이 되었고 팔 다리가 멍이 들어 출근도 못하여 집에서 서러운 마음에 울기만 하였다. 이런 정순하를 보고 박남식은 잘 못을 빌거나 부인을 위안하는 것이 아니라 “ 거지같은 중국 년들 꼴 사나 와서 중국 쪽아 보내야겠다.” 고 협박을 하면서 선풍기며 손에 쥐이는 물건들은 죄다 방바닥에 던지면서 난동을 부리군 하였는데 이런 일은 박남식의 생활에서 반복되게 일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일찍 잃어 가족의 사랑을 한껏 받으며 성장하여야 할 나이에 친척집을 전전하며 눈칫밥 먹으며 서럽게 생활한 정순화씨는 박남식을 아버지같이 잘 해주겠다는 피고의 말을 믿고 아이도 낳아서 자신의 가족을 만들어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행복한 가정생활은 만들려하였으나 모든 것이 박남식이가 정순화씨를 이용하려는 거짓된 결혼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신의 소박하지만 절박한 믿음이 산산 조각이 나고 심신이 지쳐버리고 꿈도 희망도 잃은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보고자 중국동포타운신문사 법률고충상담실에 찾았습니다.


   정순화씨의 눈물겨운 사실은 중국동포타운신문사의 변호사님의 도움을 받아 법적으로 승소의 판결은 받고 일정기간 병원치료를 받아서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 돈을 많이 벌어서 한국에 의지 가지 없는 사람들을 보살필 수  있는 쉼터를 만들겠다고 하였습니다.

 

 

중국동포타운신문      2009년 03월 10일    제146호발행        상담정리= 조유연 실장